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제국 해군 (문단 편집) == [[건함 경쟁]] == 이러한 초당적-전국민적 호응에 힘입어 독일은 1899년부터 1904년 까지 [[비텔스바흐급 전함]] 5척을 건조한 데 이어서 [[브라운슈바이크급 전함]] 5척이 1901년 부터 1906년까지 건조되었다. 그리고 1908년까지 5척이 건조된 [[도이칠란트급 전함]]은 브라운슈바이크급보다 더 향상된 장갑을 지닐 수 있었다. [[장갑순양함]] 부분에서도 1900년에 개선형 프린츠 하이드리히가 건조된데 이어 프린츠 아달베르트급 2척,룬급 2척이 1906년까지 건조되었다. 1907년부터 1908년의 기간 동안에는 이보다 개선된 장갑순양함인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취역했다. 브레멘급 경순양함 8척이 1907년까지 건조되었고, 독일 해군 최초로 가스터빈을 탑재한 순양함 뤼벡이 1905년에 취역했다. 문제는 이때 영국 해군이 당대 모든 전함들을 그대로 구식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혁신을 지닌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실전배치해 버렸다. 이때 독일인들은 크게 낙담하게 되었다.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독일 제국 해군의 목표였던 영국 해군 전력의 2/3까지 따라잡는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을 뿐더러 기존에 건조한 해군 전력으로는 신형 전함들을 연달아 배치할 영국 해군과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영국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이미 재정의 60%를 군비에 지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영국 해군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육군 증강을 희생하면서까지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거기에다가 관련 인프라 확장까지 수반한다면 그보다 더 어마어마한 돈이 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해군 증강에 대한 정부와 전국민적 열망이라는 등쌀에 못이긴 독일 의회는 킬 운하 확장 및 '''매년 [[드레드노트급]] 전함 2척, [[순양전함]] 1척'''을 건조한다는 내용의 보완법을 통과시켰고, 자그마치 9억 4천만 마르크가 할당되었다.[* 여기에 각종 어뢰정과 순양함을 건조하는 비용까지 합하면 '''당시 독일 제국 총생산의 30%~40%가 해군에 집중되었다.'''] 1907년부터 독일 해군은 본격적인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나사우급 전함]] 4척을 건조하기 시작했으며, 1909년부터는 [[헬골란트급 전함]] 4척, [[카이저급 전함]] 5척, [[바이에른급 전함]] 2척까지 건조하였다. [[순양전함]]은 1908년에 독일 최초의 [[순양전함]] [[폰 데어 탄급 순양전함|폰데어탄]]을 건조하기 시작하면서 [[몰트케급 순양전함]] 2척, [[자이틀리츠급 순양전함|순양전함 자이틀리츠]],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3척, [[경순양함]]은 1906년부터 [[드레스덴급 경순양함]] 2척, [[콜베르크급 경순양함]] 4척. [[마그데부르크급 경순양함]] 4척, [[카를스루에급 경순양함]] 2척, 그라우덴츠급 경순양함 2척, 경순양함 엘빙, 경순양함 필라우를 건조하였다. 또한 신무기인 [[잠수함]] 개발에 착수하여 1906년 독일 최초의 [[U보트]] U-1을 시작으로 1914년까지 총 48척이 건조되었으며, 독일의 해군 전력은 영국의 60% 수준 까지 필척하게 되는 수준으로 이어졌다. 이는 티르피츠 제독이 예산을 더 쏟아부으면서 계속 건함 수가 더 확장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